7월, 2025의 게시물 표시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수 있을까?

『남아 있는 나날』은 한 사람의 인생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야기에 큰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음속에 잔잔한 파장이 남는다. "내가 지나온 시간은 잘 살아온 것일까?" "그때 내가 했던 선택은 정말 최선이었을까?" 스티븐스라는 집사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삶의 장면들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품위라는 이름의 외로움 주인공 스티븐스는 평생을 '완벽한 집사'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매 순간 품위 있게 행동하려 애쓴다. 상사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개인적 감정보다는 직업윤리를 앞세운다. 그런 스티븐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한때 함께 일했던 미스 켄턴을 다시 만나러 떠나는 여정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나는 스티븐스를 보며, ‘나는 지금 얼마나 나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자주 떠올렸다. 일에 치이고, 주변의 기대에 맞추느라 진짜 내 마음은 미뤄두고 있던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티븐스는 늘 “그게 내 일이니까요”라고 말한다. 그 말 속엔 모든 감정을 접어두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을 리 없다. 억누르고 눌러두었던 것들이, 이제서야 그 틈을 비집고 올라오는 것이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만들어낸 거리 스티븐스와 미스 켄턴 사이에는 감정이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을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둘 다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예의 바르다. 그런데 그 조심스러움이 결국 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든다. 나는 이 부분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살면서 우리도 그런 순간이 있지 않나. "그때 그냥 한 마디만 했더라면…" "그 순간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은 멀어지고,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 스티븐스는 여전히 미스 켄턴을 '미스'라고 부른다. 그녀...

샐리 루니 '노멀 피플' - 사랑이라는 이름의 어긋남에 대하여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은 '사랑한다'는 감정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 풀리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다. 서로를 분명히 좋아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서, 타이밍이 어긋나서, 결국 반복해서 멀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이거… 내 얘기인가?" 하고 여러 번 멈춰 읽었다. 사랑이란 게 원래 이렇게 복잡한 건가, 아니면 우리가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는 건가,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있는데 말로 꺼낼 수 없을 때 코넬과 마리안은 서로를 좋아한다. 이건 분명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말하지 못한다. 말을 꺼낼 타이밍도 놓치고, 괜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혹시 내 감정이 거절당할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솔직히 공감도 많이 갔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도 그걸 바로 말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이 사람이 날 어떻게 볼까?’ ‘혹시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 때문에 한참을 망설였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사람이 멀어지는 걸 바라보기만 했던 적도 있다. 코넬도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무던한 사람 같지만, 내면에는 끊임없는 불안과 낮은 자존감이 있다. 마리안은 또 다르다. 집안에서 받은 상처, 스스로에 대한 무가치한 감정이 깊이 남아 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그 필요하다는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너무 많은 망설임이 앞선다. 가까이 있어도, 마음은 멀 수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 사람이 연인으로 지낼 때조차도 서로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코넬과 마리안은 물리적으로는 함께 있지만 마음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같은 방에 앉아 있어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를 때가 많다.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와 닿았다. 우리가 누구와 함께 있다고 해서 항상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니니까. 연인 사이에서도, 친구 사이에...

게일 허니맨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 혼자여도 괜찮다고 말해준 책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는 외로움과 단절, 그리고 회복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혼자인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무언가 크게 일어나지 않아도, 어떤 사람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울림이 클 수 있다는 걸 이 책이 보여줬다. 엘리너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엘리너는 평범하지 않다, 그리고 그래서 현실적이다 엘리너는 조금 이상하다. 정확히는, 사회적으로 '이상하다고 여겨질' 행동들을 한다. 혼자 살고, 말투는 무뚝뚝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휴일엔 집에서 보낸다. 그녀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특이한 여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 속에서 그녀의 머릿속을 따라가다 보면, 그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처음에 그녀를 낯설게 느꼈지만, 점점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묘하게 공감하게 됐다. 다들 어느 정도는 엘리너처럼 겉으론 멀쩡하지만, 속으론 복잡한 사람이니까.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게 편한 순간이 있고, 혼자 있는 게 이상하리만큼 익숙해지는 날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누가 따뜻하게 바라봐준다면, 그건 꽤 큰 위로다. 엘리너는 그렇게 혼자인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마음까지도. 완전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큰 사건 없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데 있다. 엘리너는 자신을 드러내는 법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법도 서툴다. 그녀가 겪은 과거는 무겁고 길다. 하지만 어느 날, 동료인 레이먼드와의 작은 친절이 시작된다. 그건 거창한 사랑도, 강렬한 우정도 아니다. 단지 아주 작은 관심, 작은 대화, 작은 도움. 나는 이 부분에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람 사이의 연결은 그렇게 시작되는 거라고, 그리고 그 작고 미묘한 것들이 어떤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는 걸 이 책이 조용히 말해주는...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 , 상실 속에서 끝까지 쥐고 있던 마음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는 단순히 어떤 미술품을 둘러싼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다. 사라진 것들, 부서진 관계, 망가진 마음 위에서 무언가를 끝까지 붙잡고 살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나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읽었다. “그날 이후 모든 게 뒤틀렸다” – 상실의 순간을 지나며 이 소설은 처음부터 하나의 충격으로 시작된다. 미술관 폭발. 그리고 주인공 테오는 그 속에서 어머니를 잃는다. 거대한 소음, 분진, 붕괴 속에서 그는 작고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을 쥐고 나오게 된다. 그게 바로 ‘황금방울새’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서 책장을 넘기는 손이 한동안 멈췄다.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현실보다, 그 죽음을 겪는 사람의 충격과 혼란이 너무 조용히 표현되어 있어서 더 아팠다. 테오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결국 책임지게 되는 삶. 그런 인생은 얼마나 불공평할까. 그런데도 그는 무너진 속에서 무언가를 쥐고 나왔다. 그게 작품이든, 기억이든, 죄책감이든 말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상실의 순간을 겪는다. 그게 가족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애쓰지만, 테오처럼 어떤 사람은 그걸 품고 살아간다. “나는 그 그림을 버릴 수 없었다” – 예술이 마음을 붙잡아줄 때 ‘황금방울새’라는 작은 회화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다. 작품 그 자체로는 미술관 한켠에 있던 작은 유화지만, 테오에겐 엄마와 함께 보았던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자, 그 날 이후로 뒤틀린 삶을 겨우 붙들고 살아가는 유일한 끈이다. 그는 그 그림을 숨기고, 들고 다니고, 죄의식을 느끼고, 또 지키려 한다. 나는 이 과정이 단순히 미술품 절도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듯, 감정을 압축하듯 그 그림 하나에 모든 걸 쏟아붓는 사람처럼 보였다. 예술이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의 그림이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기억이고, 애도이고...

존 그린의 '안녕, 헤이즐' 리뷰 - 사랑은 유한해서 더 빛나는 걸까?

존 그린의 『안녕, 헤이즐』은 단순한 청춘 로맨스가 아니다. 이 책은 유한한 존재의 시간 안에서, 사랑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한동안 멍해졌다. 웃겼고 슬펐고, 무엇보다 깊이 공감했다. 사랑은 끝이 있기 때문에 더 반짝이는 감정이 아닐까? 병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 보였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조금 긴장했다. 암을 앓는 10대 주인공. 분명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겠지 싶었다. 하지만 몇 장 넘기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야기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헤이즐은 시니컬하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냉소와 명료함이 있다. 그러다 어거스터스가 등장한다. 말장난을 잘하고,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이상하게 밝은 아이. 그 둘의 대화는 웃기고, 감정적이고, 현실적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들의 "암 이야기"보다, 그들이 나누는 감정의 언어에 먼저 끌렸다. 책을 덮고 생각했다. 사람은 결국 ‘어떻게 사느냐’보다, ‘누구와 어떤 감정을 나누며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질병보다 감정이 먼저 보이는 사랑, 그런 사랑이 가능하다는 걸 이 책이 보여주었다. 유한하다는 사실은, 사랑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어거스터스도, 헤이즐도 서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더 격렬하고, 더 조심스럽고, 더 소중해진다. 우리는 흔히 ‘영원한 사랑’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더 간절하게 마음을 쓴다. 그건 이 책을 통해 너무 분명하게 전달된다. 그들의 키스 장면보다, 침대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장면이 더 가슴을 울리는 이유도 그거다. 아무 일도 없지만, 그 시간이 소중한 순간이니까.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짧은 관계였지만, 마음만은 오래 남은 사람. 헤이즐처럼, 어거스터스처럼 나도...

오드리 니페네거 '시간 여행자의 아내' - 사랑은 시간을 기다린다

시간이 어긋나는 두 사람의 사랑.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SF적인 설정 위에 감정이라는 촘촘한 그물을 던진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기다림이라는 감정은 결국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오드리 니페네거는 시간보다 강한 감정이 있다는 걸 조용히 보여준다. 시간 여행보다 더 복잡한 감정의 거리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남자 주인공 헨리는 시간 여행자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흥미진진한 SF적 모험이 아니라, 그는 원하지 않아도 시간에 휘둘리는 존재다. 반면 그의 아내 클레어는 늘 같은 자리에서 헨리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내가 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 건, 이 설정이 단순히 환상적인 구조 때문이 아니었다. 시간의 순서를 무너뜨렸지만, 그 속에서 감정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헨리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고, 클레어는 언제 그가 나타날지 모른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믿고, 기억하고, 연결된다. 시간이란 건 누구에게나 흐르지만, 누군가에겐 너무 빠르고, 또 누군가에겐 너무 느리다. 이 소설은 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고, 그 시간 속에 고여 있는 감정을 건드린다. 나도 누군가를 기다려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약속도 확신도 없는 기다림. 그건 고통이었지만, 어쩌면 사랑이었다. 기다림은 감정의 가장 진한 형태 헨리가 시간 속을 튀듯이 이동할 때마다, 클레어는 어딘가에 남겨진다. 그녀는 울지 않는다. 화를 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일상 속에는 부재의 흔적이 가득하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클레어가 헨리의 부재에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이었다. “사라진다”는 말이 헨리에게는 일상이지만, 클레어에게는 그만큼 사랑의 감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기다린다. 아주 조용히, 단단하게. 읽는 내내, 나는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그건 능동적 감정이 아니라 수동적 고통이라 생각했지만...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을 읽고 - 진짜 가까운 사이라는 건 뭘까?

김영하의 단편 『오직 두 사람』은 겉으로는 가족 이야기지만, 사실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이나 ‘가족’이라는 단어보다도, 우리가 서로를 모른 척하게 되는 방식에 더 마음이 머물렀다. 이 리뷰는 그 거리에 대한 나의 고백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진심을 숨긴다 『오직 두 사람』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 마음이 묘했다. 어쩌면 이건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 내가 '사람'이라고 부르던 누군가와의 거리. 그 거리 속에는 말하지 않은 진심, 말하지 못한 오해, 말해도 전해지지 않는 감정이 잔뜩 엉켜 있었다. 작품 속 ‘나’는, 딸을 잃은 친구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회피한다. 그의 반응은 지나치게 건조하고, 어딘가 무의식적으로 차갑다. 그런데 나는 그 태도가 이상하게 이해됐다. 우리도 가끔 너무 가까운 사람이 슬픔에 빠졌을 때 감정을 회피하거나, 아무 말도 못하게 될 때가 있지 않던가? 진짜 가까운 관계란, 때로는 거리감 없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가 무너지는 순간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치는 관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인간다운 모습이라면, 우린 누구에게 진짜 마음을 주고 있을까?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 말하지 않기 때문에 멀어지는 사이 소설은 말하지 않는 관계를 보여준다. 가족, 친구, 연인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자주 침묵을 택한다.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생각이 어쩌면 관계를 더 멀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직 두 사람』은 그러한 침묵의 틈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 틈에서 생겨난 균열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한 가지 떠올랐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차마 말하지 못한 말들. 오히려 낯선 사람보다 더 조심스럽게 느껴졌던 순간들. 작품 속 인물은 슬픔 앞에서 무력하다. 위로하는 척...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오 태양' - 감정도 프로그래밍 될 수 있을까?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지만, 결국은 사랑과 고독,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클라라라는 존재를 통해 "감정도 학습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다웠던 클라라를 통해 내 감정의 방향을 돌아보게 되었다. 인간보다 더 따뜻한 존재, 클라라 『클라라와 태양』을 처음 펼쳤을 땐, 단순히 인공지능 로봇의 성장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클라라는 '기계'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내 안에 자리잡았다. 그녀는 누군가의 친구가 되기 위해 관찰하고, 이해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태양이 있다. 이 책에서 태양은 단순한 에너지원 이상의 상징이다. 클라라는 태양이 줄 수 있는 회복력과 따뜻함을 믿는다. 누군가는 그 믿음을 순진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믿음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역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듯 무언가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클라라의 시선은 언제나 조용하다.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지 않지만, 그녀의 말투 속에는 이해하려는 의지, 다가가고자 하는 배려가 깃들어 있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보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 아이러니는 소설의 진짜 묘미다. 클라라를 통해 '감정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되고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봤다. 클라라가 믿은 것, 그리고 우리가 잊고 지낸 것 책 속에서 클라라는 조용히 누군가를 지켜본다. 주인을 사랑하고, 그녀가 아픈 날에는 태양에게 간절히 부탁을 한다. 이 장면에서 나는 무척 오래 멈춰 서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정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 잊고 지낸 무언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클라라의 기도는 계산된 코드가 아니라, 관찰과 기억, 그리고 반복된 행동 속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 아...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읽고 - 책이 사라진 사회에서 나는 누구일까?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은 “책을 읽는 것이 범죄인 세상”이라는 설정을 가진 SF 고전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이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도록 강요받고, 모든 책이 불타는 세계. 그 안에서 나는 책을 지키는 편에 섰을까, 아니면 조용히 입 다물고 살았을까?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세상 이 소설의 주인공 가이는 ‘소방관’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소방관과는 다르다. 이 세계에서 소방관은 불을 끄는 게 아니라, 책을 태우는 사람 이다. 왜냐하면 책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고, 생각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엔 황당했다. 하지만 문득, 우리 현실과 아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사람들이 ‘복잡한 생각’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빨리 이해되기를 원하고, 깊이 따지기보단 재미 위주로 살아간다. 나도 가끔 그렇게 산다. 깊게 생각하면 피곤해지니까, 그냥 넘겨버릴 때가 많다. 이 책은 그 습관을 뒤흔든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나는 왜 책을 읽고 싶은 걸까?” 질문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가이 몬태그의 변화 과정을 통해 천천히 깨닫게 된다. 책이 불타는 장면보다 더 무서운 건 『화씨 451』에서 책이 타는 장면은 여러 번 등장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의 무관심 이었다. 불타는 책을 보고도 아무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책이 왜 중요한지조차 모르기 때문 이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무섭고 슬펐다. 요즘도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긴 글보다 짧은 영상이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 그게 잘못이라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게 너무 많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조차도 요즘은 책을 손에 들 일이 점점 줄어든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

시간을 넘어 반복되는 질문 - '클라우드 아틀라스' 리뷰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처음 읽을 때 꽤나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이야기가 여섯 개나 되고, 각각의 시대와 장소도 다르며, 심지어 장르조차 뒤섞여 있었다. 도대체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익숙한 감정이 자꾸 튀어나왔다. 전혀 다른 인물들과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도, 그 안에서 반복되는 건 결국 똑같은 인간의 실수와 욕망, 그리고 선택이었다. 이 책은 단지 문학적 구조의 실험을 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반복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착취, 반복되는 침묵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미래 사회에서 인공인간으로 태어난 ‘손미451’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처음에는 아무 의심 없이 주어진 일만 수행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왜?’라는 질문을 품게 된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더 이상 시스템의 일부가 아니다.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살아왔는지.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겉으로는 자유롭다고 하지만, 때때로 보이지 않는 규칙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순응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손미는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그 시스템의 본질을 바라본다. 그 태도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줬다. 이 책은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지만, 그 무심한 시선 안에 숨어 있는 질문들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진다. 나는 정말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 만들어준 시야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나의 선택이 다음 세대를 만든다면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특별한 이유는 각기 다른 이야기가 서로 얇게, 그러나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생이나 환생처럼 명확하게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책을 읽다 보면 한 이야기 속 작은 선택이 다음 이야기의 중요한 배경이 되기도 하고, 한 인물...

진짜 힘은 어디에 있을까 - '어스시의 마법사'가 던진 질문

어슐러 K. 르귄의 『어스시의 마법사』는 마법과 용, 예언과 모험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판타지 소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곧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판타지의 탈을 쓴 깊은 성찰의 이야기이며, 무엇보다 ‘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책장을 덮은 뒤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강함’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내 그림자와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힘이란, 마법보다 더 무거운 책임이었다 주인공 '게드'는 선천적인 재능을 지닌 소년 마법사다. 처음엔 스승도 놀랄 만큼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고, 일찌감치 마법학교에 들어가며 모두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바로 그 '강한 힘'은 그를 위험하게 만들고 만다. 게드는 교만과 질투로 인해 어둠의 존재를 불러들이고, 그 결과 그는 평생 자신이 만든 그림자를 쫓게 된다. 나는 이 설정이 단순히 환상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저지르는 실수와도 닮았다고 느꼈다. 열정이 넘쳤던 시절, 내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앞섰던 순간들. 하지만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는, 항상 한참 후에야 깨닫게 된다. 게드는 힘을 얻은 대신 책임을 배운다. 그리고 그 책임이란, 단순히 누군가를 지키는 것만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용기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그는 끝끝내 이해하게 된다. 그림자와 마주하는 일, 나를 인정하는 일 게드가 맞서 싸우는 ‘그림자’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것은 게드 자신이 억눌렀던 자아의 어두운 면, 즉 그의 두려움, 분노, 교만, 욕망이 형태를 갖춘 존재다. 나는 멈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우리도 모두 하나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침착하고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인정받고 싶고, 불안하고, 때론 누군가를 이기고 싶어하는 감정이 들끓는...

사랑받기보다 이해받고 싶었던 시간 - 최은영 '쇼코의 미소'를 읽고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는 단편소설집이지만,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감정의 깊이, 그리고 인간 사이의 거리감이 너무도 섬세하게 다가온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사랑'보다는 '이해'받고 싶었던 내 과거를 떠올렸다. 그 시절의 감정이 이 책에 다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리뷰는 내 안의 감정과 『쇼코의 미소』가 닿았던 지점들을 이야기해 본 글이다. 진심은 항상 전달되는 게 아니었다 『쇼코의 미소』의 첫 번째 작품이자 제목이기도 한 「쇼코의 미소」는 일본에서 온 교환학생 쇼코와 화자인 소녀 '나'의 관계를 그린다. 쇼코는 조용하고, 어눌하고, 뭔가 자꾸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꾸 신경 쓰이고, 묘하게 마음을 끄는 존재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나'의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닌 감정. 어딘가 소외된 듯 보이지만 그를 향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거리. 그리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오해. 이야기 내내 '이해하려는 마음'과 '그럼에도 불편한 마음'이 교차한다. 그리고 그 모순된 감정이 너무나도 솔직해서, 오히려 진짜 같았다. 나 역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를 선뜻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내 안의 고정관념이나 두려움 때문에 끝내 멀어졌던 경험. 진심은 늘 충분하지 않다. 말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고, 말해도 왜곡되는 게 '감정'이란 걸 이 책은 보여준다. 여성들의 이야기, 여성들만이 알 수 있는 감정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여성의 시선, 여성의 관계, 여성만의 경험을 다룬다. 엄마와 딸, 친구 사이, 연인, 또는 여성과 여성 사이의 어긋난 이해. 그 이야기들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한지와 영주」에서는 서로 의지하던 두 친구가 한 순간의 선택으로 ...

달은 멀어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 장류진 '달까지 가자' 리뷰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는 단순히 ‘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직장 생활, 청춘의 고단함,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 글은 그 소설을 통해 내가 나의 청춘을 어떻게 써왔는지를 되짚어보는 시간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돈’이 전부가 되었을까? 『달까지 가자』의 주인공 ‘문혜영’은 평범한 대기업 계약직 사원이다. 정규직 전환은커녕, 하루하루 눈치 보며 버티는 삶 속에서 문득 기회 하나가 굴러온다. 동료들과 함께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들며, 그녀는 인생 처음으로 통장에 ‘0이 아닌 숫자’를 보게 된다. 그 과정이 마냥 낯설진 않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청춘을 바쳐 직장을 다니고, 급여일만 손꼽아 기다리며 “이게 사는 건가?”라는 물음을 속으로 삼켜야 했던 날들이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돈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었고, 그 돈을 어떻게 ‘벌지’보다, ‘안 벌면 안 되는 이유’에만 몰두하게 됐다. 『달까지 가자』는 그 현실을 아무 말 없이 들이민다. 주인공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게 내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이다. 그게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책을 읽다 문득 깨달았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버텨온 우리들의 연대 이 소설이 단순한 ‘코인 소설’이 아닌 이유는, ‘함께’의 의미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혜영과 친구들은 돈을 벌기 위해 뭉쳤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의외로 서로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단순히 이득만을 쫓는 게 아니라, 서로의 약점을 감추고, 미래를 나눠 갖고, 가끔은 싸우고, 그러다도 결국 다시 손을 잡는다. 나는 이 소설의 진짜 힘이 거기에 있다고 느꼈다. ‘돈’이 이끌지만, 결국 ‘사람’이 중심에 있다는 것. 우리도 청춘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순간, “같이 가자”는 말에 의지해왔다. 회사에서, 학원에서, 조별 과제에서, 혹은 그냥 편의...

박서련 '체공녀 강주룡'을 읽고 - 작은 사람의 큰 외침

『체공녀 강주룡』은 실존 인물 강주룡을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이지만, 단지 과거를 기록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소설은 지금 우리에게 “당신은 무엇을 위해 버텨본 적 있나요?”라고 묻는다.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잊고 지낸 질문들과 마주하게 됐고, '존엄', '용기', '버틴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느꼈다. 이 리뷰는 그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낸 기록이다. ‘버티는 사람’을 잊지 않게 만드는 이야기 강주룡이라는 이름은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엔 낯설었다. 1920~30년대 조선, 평양 고무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 하지만 그가 평양의 ‘을밀대’ 위에 올라가 “여공도 사람이다!”라고 외쳤다는 이야기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이 소설은 그녀가 체공녀, 즉 공중에 떠 있는 여자가 되어 지금의 세상을 내려다보는 상상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판타지적 설정 속에서도 그녀가 했던 말과 행동은 너무도 현실적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는 게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강주룡은 사실 ‘거창한 운동가’라기보다 한 명의 ‘평범한 여성 노동자’였다. 하지만 부당한 대우를 더는 참지 못했고, 그저 “내가 사람 대접 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을밀대에 올라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높이에 서 있을까? 소설에서 강주룡은 하늘을 떠다니는 존재가 되어 지금의 한국을 내려다본다. 그녀가 본 건 화려한 도시와 발전된 기술만이 아니다. 아직도 해고에 떨고 있는 사람들, 비정규직, 차별, 그리고 '함께 살기' 어려운 세상. 나는 이 장면에서 갑자기 숨이 막혔다. 우리는 분명히 더 나아졌다고 믿고 있었는데, 어쩌면 같은 문제를 더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강주룡이 말한다. “다른 게 뭔데? 아직도 버티는 사람밖에 없잖아.” 지금의 우리는, 예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법 -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리뷰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어려운 SF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외계인의 언어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을 조용히 던진다.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나의 삶과 기억,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마주할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이 리뷰는 그 감정을 나의 말로 정리해 본 글이다. 말이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 책의 주인공 루이즈는 언어학자다. 어느 날,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가 지구에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부는 루이즈에게 그들의 언어를 해독해 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엔 외계어니까 당연히 어렵고, 낯설다. 그런데 이상한 건, 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루이즈의 생각 방식이 바뀌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는 시간을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헵타포드의 언어는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본다. 그 언어를 이해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한눈에 들어온다. 루이즈는 그들의 언어를 통해 미래의 기억까지 ‘느끼게’ 된다. 이걸 읽으며 나는 ‘말이 사고를 바꾼다’는 말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내가 자주 쓰는 말과 생각하는 구조가 곧 내 인생을 해석하는 방식이란 것. 루이즈가 언어를 바꾸면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처럼, 나 역시도 어떤 단어를 자주 쓰는지, 어떤 시선으로 하루를 보는지 돌아보게 됐다. 그 언어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삶의 방향도, 감정도, 기대도 달라질 수 있다. 단어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나의 세계를 정하는 방식이다. 미래를 알아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헵타포드 언어를 완전히 이해한 루이즈는 미래를 ‘기억’하게 된다. 즉,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그녀의 기억 속에 떠오른다. 그런데 그 미래는 행복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무엇보다 딸을 잃는 고통까지 알게 된다. 하지만 루이즈는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