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 , 상실 속에서 끝까지 쥐고 있던 마음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는 단순히 어떤 미술품을 둘러싼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다. 사라진 것들, 부서진 관계, 망가진 마음 위에서 무언가를 끝까지 붙잡고 살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나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읽었다.
“그날 이후 모든 게 뒤틀렸다” – 상실의 순간을 지나며
이 소설은 처음부터 하나의 충격으로 시작된다. 미술관 폭발. 그리고 주인공 테오는 그 속에서 어머니를 잃는다. 거대한 소음, 분진, 붕괴 속에서 그는 작고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을 쥐고 나오게 된다. 그게 바로 ‘황금방울새’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서 책장을 넘기는 손이 한동안 멈췄다.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현실보다, 그 죽음을 겪는 사람의 충격과 혼란이 너무 조용히 표현되어 있어서 더 아팠다. 테오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결국 책임지게 되는 삶. 그런 인생은 얼마나 불공평할까. 그런데도 그는 무너진 속에서 무언가를 쥐고 나왔다. 그게 작품이든, 기억이든, 죄책감이든 말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상실의 순간을 겪는다. 그게 가족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애쓰지만, 테오처럼 어떤 사람은 그걸 품고 살아간다.
“나는 그 그림을 버릴 수 없었다” – 예술이 마음을 붙잡아줄 때
‘황금방울새’라는 작은 회화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다. 작품 그 자체로는 미술관 한켠에 있던 작은 유화지만, 테오에겐 엄마와 함께 보았던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자, 그 날 이후로 뒤틀린 삶을 겨우 붙들고 살아가는 유일한 끈이다.
그는 그 그림을 숨기고, 들고 다니고, 죄의식을 느끼고, 또 지키려 한다. 나는 이 과정이 단순히 미술품 절도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듯, 감정을 압축하듯 그 그림 하나에 모든 걸 쏟아붓는 사람처럼 보였다.
예술이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의 그림이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기억이고, 애도이고, 생존 그 자체일 수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어떤 음악, 어떤 문장, 어떤 사진 하나에 묘하게 나 자신을 집어넣고 버티던 시절. 그때 나를 구한 건 말 대신 감정이 담긴 예술이었다. 테오에게 그게 황금방울새였던 것처럼.
“어긋난 채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것” – 성장의 다른 얼굴
『황금방울새』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극복"이나 "치유"의 서사는 거의 없다. 테오는 엇나가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친구 보리스와의 관계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이 너무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완벽하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고, 감정으로 움직이는 인물들. 보리스는 테오에게 말한다. "우린 둘 다 부서졌어. 그게 전부야."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자주 ‘괜찮은 척’하며 살아간다. 상처를 가리고, 감정을 숨기고, 그래도 정상처럼 보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걸 허락하지 않는다. 부서진 채로 살아가는 사람도 그 자체로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걸 말해준다.
어떤 기억은 버려지지 않고, 어떤 감정은 작품처럼 남는다
『황금방울새』를 다 읽고 난 뒤, 나는 테오가 그 그림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단지 죄책감이나 상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 그림은 테오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삶 속에서도 끝까지 쥐고 있던 마음. 그걸 붙잡고 있었기에, 그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도나 타트는 섬세하고 조밀한 문장으로 "상실 이후에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조용히 말해준다. 우리가 꼭 치유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예술은 그런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우리에게 조금씩 알려준다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