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넘어 반복되는 질문 - '클라우드 아틀라스' 리뷰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처음 읽을 때 꽤나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이야기가 여섯 개나 되고, 각각의 시대와 장소도 다르며, 심지어 장르조차 뒤섞여 있었다. 도대체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익숙한 감정이 자꾸 튀어나왔다. 전혀 다른 인물들과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도, 그 안에서 반복되는 건 결국 똑같은 인간의 실수와 욕망, 그리고 선택이었다. 이 책은 단지 문학적 구조의 실험을 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반복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착취, 반복되는 침묵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미래 사회에서 인공인간으로 태어난 ‘손미451’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처음에는 아무 의심 없이 주어진 일만 수행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왜?’라는 질문을 품게 된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더 이상 시스템의 일부가 아니다.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살아왔는지.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겉으로는 자유롭다고 하지만, 때때로 보이지 않는 규칙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순응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손미는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그 시스템의 본질을 바라본다. 그 태도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줬다. 이 책은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지만, 그 무심한 시선 안에 숨어 있는 질문들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진다. 나는 정말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 만들어준 시야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나의 선택이 다음 세대를 만든다면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특별한 이유는 각기 다른 이야기가 서로 얇게, 그러나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생이나 환생처럼 명확하게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책을 읽다 보면 한 이야기 속 작은 선택이 다음 이야기의 중요한 배경이 되기도 하고, 한 인물의 기록이 다음 세대의 진실이 되기도 한다. 그 구조를 따라가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삶 역시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

우리는 흔히 과거는 지나갔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과거의 선택은 지금의 삶에, 그리고 지금의 삶은 미래의 사람들에게 반드시 영향을 남긴다고. 그 영향은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게 이어지고, 어떤 흔적은 세대와 세대를 넘어 전달된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의 말과 행동, 나의 침묵까지도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졌다. 이 책이 대단한 건 이런 철학적인 메시지를 이야기 구조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점이다. ‘연결’이라는 주제가 설명 없이도 독자의 마음에 닿는다.

나는 목격자에 머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의 인물들은 모두 ‘변화의 순간’을 마주한다. 누구는 그것을 외면하고, 누구는 도망치며, 또 어떤 이는 그 진실을 기록하려 한다. 모두 다른 방식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그들은 더 이상 그냥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그 점이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지금 나는 무엇을 지켜보고 있고, 그걸 알게 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목격자’라는 단어였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머무르는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될 수 있는지를, 이 책은 조용히 일깨운다. 나조차도 많은 것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외면해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어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걸 알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선택일 것이다.

나는 누구의 다음 장면이 될까?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복잡한 구조 속에 너무나 단순한 질문 하나를 담고 있다. "너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것이 전부인 책이었다. 이야기들은 파도처럼 서로를 밀고 가고, 어느 한 사람의 선택이 다음 시대의 희망이 되거나 절망이 된다. 그 구조는 우리의 현실과도 너무 닮아 있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나는 이 질문에 머물렀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남기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말, 태도, 선택 하나가 누군가의 삶에 어떤 지문처럼 남을 수 있을까? 그 답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이제 더는 무심하게 살 수는 없다는 감정이다. 이 책은 나를 조금 더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그리고 책임감을 가진 독자로 만들어주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그런 책이었다. 연결을 말하지만 결국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묻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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