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을 읽고 - 진짜 가까운 사이라는 건 뭘까?
김영하의 단편 『오직 두 사람』은 겉으로는 가족 이야기지만, 사실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이나 ‘가족’이라는 단어보다도, 우리가 서로를 모른 척하게 되는 방식에 더 마음이 머물렀다. 이 리뷰는 그 거리에 대한 나의 고백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진심을 숨긴다
『오직 두 사람』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 마음이 묘했다. 어쩌면 이건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 내가 '사람'이라고 부르던 누군가와의 거리. 그 거리 속에는 말하지 않은 진심, 말하지 못한 오해, 말해도 전해지지 않는 감정이 잔뜩 엉켜 있었다.
작품 속 ‘나’는, 딸을 잃은 친구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회피한다. 그의 반응은 지나치게 건조하고, 어딘가 무의식적으로 차갑다. 그런데 나는 그 태도가 이상하게 이해됐다. 우리도 가끔 너무 가까운 사람이 슬픔에 빠졌을 때 감정을 회피하거나, 아무 말도 못하게 될 때가 있지 않던가?
진짜 가까운 관계란, 때로는 거리감 없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가 무너지는 순간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치는 관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인간다운 모습이라면, 우린 누구에게 진짜 마음을 주고 있을까?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 말하지 않기 때문에 멀어지는 사이
소설은 말하지 않는 관계를 보여준다. 가족, 친구, 연인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자주 침묵을 택한다.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생각이 어쩌면 관계를 더 멀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직 두 사람』은 그러한 침묵의 틈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 틈에서 생겨난 균열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한 가지 떠올랐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차마 말하지 못한 말들. 오히려 낯선 사람보다 더 조심스럽게 느껴졌던 순간들.
작품 속 인물은 슬픔 앞에서 무력하다. 위로하는 척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회피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모습을 흉보지 못했다. 나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진심을 감추거나, '적당히 반응하는 법'을 익혀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짜 가까운 사이에 하고 있는 행동들은 어쩌면 회피, 거리두기, 조심함이 아닌가 싶었다.
결국 남는 건, 오직 나 하나
소설은 마지막에 묘한 허무함을 남긴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지만, 결국 혼자였다는 감각. 그와의 대화도, 관계도, 위로도 모두 형태만 있었지 실체는 없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뻐근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모양만 있는 관계였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이지만, 감정을 나누지 못한 관계.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였지만, 결국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 그 감각이 이 소설의 모든 페이지에 묻어나 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내 관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말하지 않았던 진심, 눈치만 봤던 순간들, 상처를 피하기 위해 모른 척했던 마음들.
『오직 두 사람』은 큰 사건이 있는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읽고 나면 조용히, 오래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곧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정으로 이어진다. 가까운 사이라는 건, 결국 거리가 아니라 진심을 꺼내놓을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가까움’이라는 환상에 대해
『오직 두 사람』은 관계에 대한 착각을 해체한다. 진짜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했던 존재가, 사실은 가장 멀었을 수도 있다는 찜찜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나 자신을 향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은 뒤, 나는 “정말 가까운 사람인가?”라는 물음을 나에게 던졌다. 가까워서 편한 게 아니라, 가까워서 조심스러운 사이. 그런 관계는 진짜일까, 아니면 오래된 습관일까.
『오직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은 진심 속에서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관계의 온도를 슬쩍 꺼내보이게 만든다. 그 조용한 울림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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