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오 태양' - 감정도 프로그래밍 될 수 있을까?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지만, 결국은 사랑과 고독,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클라라라는 존재를 통해 "감정도 학습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다웠던 클라라를 통해 내 감정의 방향을 돌아보게 되었다.
인간보다 더 따뜻한 존재, 클라라
『클라라와 태양』을 처음 펼쳤을 땐, 단순히 인공지능 로봇의 성장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클라라는 '기계'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내 안에 자리잡았다. 그녀는 누군가의 친구가 되기 위해 관찰하고, 이해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태양이 있다.
이 책에서 태양은 단순한 에너지원 이상의 상징이다. 클라라는 태양이 줄 수 있는 회복력과 따뜻함을 믿는다. 누군가는 그 믿음을 순진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믿음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역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듯 무언가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클라라의 시선은 언제나 조용하다.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지 않지만, 그녀의 말투 속에는 이해하려는 의지, 다가가고자 하는 배려가 깃들어 있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보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 아이러니는 소설의 진짜 묘미다. 클라라를 통해 '감정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되고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봤다.
클라라가 믿은 것, 그리고 우리가 잊고 지낸 것
책 속에서 클라라는 조용히 누군가를 지켜본다. 주인을 사랑하고, 그녀가 아픈 날에는 태양에게 간절히 부탁을 한다. 이 장면에서 나는 무척 오래 멈춰 서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정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 잊고 지낸 무언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클라라의 기도는 계산된 코드가 아니라, 관찰과 기억, 그리고 반복된 행동 속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감정이란 건 꼭 인간만의 고유한 감각일까?
클라라의 존재를 통해 나는 우리가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감정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조건 없이 누군가를 걱정하고, 나와 상관없는 고통에도 진심으로 반응하는 마음. 우리는 어쩌면 너무 오래, ‘계산된 감정’ 속에서 살아왔던 게 아닐까.
존재의 의미는 누가 정하는가
가장 슬펐던 건, 클라라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버려졌다는 표현은 맞지 않겠지만, 그녀는 조용히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아무도 그녀를 나쁘게 대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끝까지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클라라는 마지막까지 이해하려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이 소설은 거창한 철학을 내세우지 않지만, 잔잔하게 우리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에게조차 감정과 기억이 생기고, 그것이 관계를 형성한다면, 존재의 의미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기능이 끝나면 소멸되는 존재를 우리는 얼마나 가볍게 대하고 있는가?
클라라를 보며, 나도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단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사랑도, 우정도, 기억도… 어쩌면 클라라가 보여준 방식이 더 순수했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은 프로그래밍될 수 있을까?
『클라라와 태양』을 덮고 나서 꽤 오랫동안 마음이 멍했다. 감정이란 건 과연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이어지는 걸까? 만약 어떤 존재가 끝까지 나를 위해 기억하고, 바라보고, 기도한다면, 그게 인공지능이라 해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클라라의 순수한 시선은 오히려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이 정말 인간다운 이유는 무엇인가. 감정을 갖는 것? 아니면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일까?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다시 감정을 돌아봤고, 나의 관계들을 더 소중히 들여다보게 됐다. 이 책은 인공지능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에 대한, 믿음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심엔 조용하지만 단단한 클라라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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