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보다 이해받고 싶었던 시간 - 최은영 '쇼코의 미소'를 읽고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는 단편소설집이지만,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감정의 깊이, 그리고 인간 사이의 거리감이 너무도 섬세하게 다가온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사랑'보다는 '이해'받고 싶었던 내 과거를 떠올렸다. 그 시절의 감정이 이 책에 다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리뷰는 내 안의 감정과 『쇼코의 미소』가 닿았던 지점들을 이야기해 본 글이다.
진심은 항상 전달되는 게 아니었다
『쇼코의 미소』의 첫 번째 작품이자 제목이기도 한 「쇼코의 미소」는 일본에서 온 교환학생 쇼코와 화자인 소녀 '나'의 관계를 그린다. 쇼코는 조용하고, 어눌하고, 뭔가 자꾸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꾸 신경 쓰이고, 묘하게 마음을 끄는 존재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나'의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닌 감정. 어딘가 소외된 듯 보이지만 그를 향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거리. 그리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오해.
이야기 내내 '이해하려는 마음'과 '그럼에도 불편한 마음'이 교차한다. 그리고 그 모순된 감정이 너무나도 솔직해서, 오히려 진짜 같았다.
나 역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를 선뜻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내 안의 고정관념이나 두려움 때문에 끝내 멀어졌던 경험. 진심은 늘 충분하지 않다. 말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고, 말해도 왜곡되는 게 '감정'이란 걸 이 책은 보여준다.
여성들의 이야기, 여성들만이 알 수 있는 감정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대부분 여성의 시선, 여성의 관계, 여성만의 경험을 다룬다. 엄마와 딸, 친구 사이, 연인, 또는 여성과 여성 사이의 어긋난 이해. 그 이야기들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한지와 영주」에서는 서로 의지하던 두 친구가 한 순간의 선택으로 갈라선다. 각자의 삶에서 더 나은 것을 향해 가려고 했지만, 그 안에서 놓아야 했던 것들이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여성’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주 선택을 강요당하는지를 생각했다.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 어떤 삶이 맞는지, 왜 나만 희생해야 하는지.
최은영 작가의 시선은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그들의 마음을 따라가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소리 없는 위로가 된다. “그렇게 느낀 건 너만이 아니었다”고.
끝까지 이해하지 못해도, 곁에 있는 일
이 책의 모든 단편을 관통하는 감정은 ‘완전한 이해는 없지만, 그럼에도 곁에 머무는 일’이었다.
우리는 때로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 내 감정을 알아줬으면, 내 마음을 완전히 이해해줬으면. 하지만 살아보니, 그건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누군가를 오해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 옆에 있어준다면, 그게 진짜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쇼코의 미소』를 읽으며 나는 사랑은 커다란 감정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의 반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거창한 사건 없이,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작은 감정들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고, 또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순간들이 쌓인다.
이해받고 싶었던 시간의 기록
『쇼코의 미소』는 ‘사랑’보다 ‘이해받고 싶었던’ 시절의 기록이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누군가에게 설명되고 싶었고,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오해했고, 다정했던 관계조차 아무 말 없이 멀어졌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내가 놓쳐온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해받지 못했지만, 그 감정은 분명 진짜였다고.”
『쇼코의 미소』는 그런 감정을 잊지 않게 해준다. 소리 없이 흔들렸던 마음들을, 조용히 기록하고 꺼내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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