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읽고 - 책이 사라진 사회에서 나는 누구일까?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은 “책을 읽는 것이 범죄인 세상”이라는 설정을 가진 SF 고전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이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도록 강요받고, 모든 책이 불타는 세계. 그 안에서 나는 책을 지키는 편에 섰을까, 아니면 조용히 입 다물고 살았을까?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세상

이 소설의 주인공 가이는 ‘소방관’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소방관과는 다르다. 이 세계에서 소방관은 불을 끄는 게 아니라, 책을 태우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책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고, 생각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엔 황당했다. 하지만 문득, 우리 현실과 아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사람들이 ‘복잡한 생각’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빨리 이해되기를 원하고, 깊이 따지기보단 재미 위주로 살아간다. 나도 가끔 그렇게 산다. 깊게 생각하면 피곤해지니까, 그냥 넘겨버릴 때가 많다.

이 책은 그 습관을 뒤흔든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나는 왜 책을 읽고 싶은 걸까?” 질문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가이 몬태그의 변화 과정을 통해 천천히 깨닫게 된다.

책이 불타는 장면보다 더 무서운 건

『화씨 451』에서 책이 타는 장면은 여러 번 등장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의 무관심이었다. 불타는 책을 보고도 아무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책이 왜 중요한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무섭고 슬펐다. 요즘도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긴 글보다 짧은 영상이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 그게 잘못이라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게 너무 많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조차도 요즘은 책을 손에 들 일이 점점 줄어든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책이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담긴 ‘기억’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한 번 불타면 되돌릴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책이고, 생각이고, 질문이었다.

나는 어느 편에 있었을까?

이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책을 외우는 사람들’이 있다. 책이 금지된 세상에서, 그들은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워서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 다시 책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책이,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만 남아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그 편에 설 수 있을까?” 책을 지키기 위해, 생각을 지키기 위해 소수의 입장이 되는 걸 감수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다. 그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해졌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질문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 그건 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지켜야 할 가치라는 것.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화씨 451』은 불타는 책을 그리면서도, 결국은 생각하는 사람의 삶에 대해 말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가벼운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이 소설이 그린 미래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생각을 남기기 위해서. 질문하는 법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문득 생각이 든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누구의 말만 듣게 될까?”

그 답은, 아마 『화씨 451』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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