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사람이 그리운 날엔 이 책을 꺼내기로 했다

정세랑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은 바이러스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처음엔 그 설정이 낯설지 않았다. 팬데믹을 겪은 우리에겐 그 어떤 디스토피아보다 현실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 마음에 남은 건 불안도 공포도 아닌, 따뜻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걸 ‘SF소설’이라고 부르는 게 조금 망설여졌다. 이 책은 차라리, 사람이 너무 그리운 날, 꺼내 읽게 되는 이야기였다.

소설 속 격리소보다, 내 일상이 더 외로웠다

처음엔 단순히 설정이 궁금해서 읽었다. 바이러스와 붕괴된 사회 시스템, 격리소라는 특수한 공간.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어느 순간,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보다 저들이 더 인간답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지구 끝의 온실』의 격리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사람들이 함께 존재한다. 함께 음식을 나누고, 사소한 대화를 나누고, 라디오를 틀고, 누군가의 기억을 듣는다. 반면에 내가 겪은 팬데믹 시절의 현실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혼자였고, 대화보다는 통지, 감정보다는 지시가 더 익숙한 하루하루였다. 나는 점점 더 사회적인 관계를 '의무'처럼 여기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타인과 연결되는 게 피로해졌다. 그 고립감은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이 책 속 세계가, 역설적으로 더 ‘살아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를 함께 살아가는 일

책을 읽으면서 특히 마음에 남았던 장면이 있다. 격리소에서의 식사 시간, 라디오 방송을 함께 듣는 시간, 누군가가 불면증을 털어놓고 공감받는 순간들. 이 모든 장면은 특별하지 않지만, ‘함께’이기에 특별해진다. 나는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아끼게 됐을까?” “누군가의 마음을 물어볼 여유조차 사라진 게 언제부터였지?” 지금 우리의 일상은 정보로 가득하지만, 정서적 여백은 줄어들고 있다. 그 여백을 가득 채우는 방법은,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그저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것임을, 이 소설은 말없이 보여준다.

SF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장르는 SF이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느낀 건 철학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당연시되던 시스템들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는가. 『지구 끝의 온실』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거창한 영웅 서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선택으로 보여준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식재료를 나누고,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 이 모든 행동은 ‘인간성’이라는 단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장면들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에게 깊이 남는 이유는, 우리 사회는 점점 이런 인간적인 장면을 찾기 어려운 구조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기술 없이 살아도 괜찮았다. 사람만 있다면.” 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만든다. 하지만 기술이 모든 것을 대신하게 된 순간, 우리는 질문을 줄이고, 공감을 생략하고, 관계를 생략하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인터넷도 없고, 검색도 안 되지만 대신 서로를 바라보고, 묻고, 기다려준다. 이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일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내 하루를 돌아봤다.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인사했는가?" "오늘 내가 나눈 대화엔 온기가 있었는가?" 이런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지구 끝의 온실』은 단순한 SF가 아니었다. 그건 나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는 이야기였다.

『지구 끝의 온실』은 디스토피아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엔 가장 따뜻한 인간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팬데믹 이후, 누구나 조금씩은 외로움에 익숙해졌고, 고립에 무뎌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세랑 작가는 이 이야기로 말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함께 살아간다는 건 여전히 가능하다고.” 사람이 그리운 날, 혹은 인간성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때 나는 이 책을 꺼내 읽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만큼은,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그런 작은 변화가, 우리를 다시 회복시킬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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