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로페』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 오디세우스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그의 아내 페널로페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녀는 단지 기다리기만 했던 충직한 아내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빼놓고 살았다는 거였다. 고전 속에서 페널로페는 늘 조용히, 인내심 있게 남편을 기다리는 이상적인 여인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애트우드는 그 이미지를 통째로 흔들어버린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됐다. 페널로페가 드디어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말들엔 억울함, 지루함, 분노, 자조, 사랑… 모든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라고 말하는 순간
책의 첫 문장에서부터 페널로페는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충직한 아내가 아니었다.” 이 문장은 신화 속 페널로페와는 너무 달라서 놀랍지만, 그래서 더 설득력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 생각했다. 우리가 ‘충직하다’, ‘인내심이 있다’고 말할 때, 그 말 안에 얼마나 많은 침묵과 희생이 숨어 있었는지를. 그녀는 그냥 조용히 기다린 게 아니었다. 매일 불안을 삼키고,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고, 아이를 키우며 자신을 버티게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내 속은 늘 복잡하고 힘들었는데. 어쩌면 그런 순간들을 지나왔던 내 경험이 이 이야기와 맞닿아 있었던 것 같다.
기다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페널로페는 20년 동안 오디세우스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아는 ‘기다림’이 아니다. 구혼자들이 몰려오고, 왕국은 흔들리고, 사람들은 그녀를 시험한다. 그 속에서 그녀는 혼자 결정하고, 또 버텨야 했다.
이런 부분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아팠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그냥 ‘기다리는 척’만 해도 되는 일이 아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는 살아야 했고, 매일 선택을 해야 했고, 누군가의 기대 속에 나를 맞춰야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누군가의 말을 기다리던 시간들, 나 자신을 설명할 기회를 바라던 날들을 떠올렸다. 페널로페는 내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대신 꺼내주는 것 같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하녀들의 이야기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하녀 열두 명’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오디세우스가 돌아온 후 처형된 하녀들이다. 페널로페 곁에서 일했던,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여자들.
그 하녀들은 끊임없이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죽어야 했나요?” 그들의 목소리는 분노하고, 울부짖고, 조롱한다. 그리고 페널로페는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답하지 못한다. 그 순간이 나는 너무 생생하고 아팠다.
세상에는 늘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조용히 사라져버린 이름들, 들리지 않았던 이야기들. 그 하녀들은 나에게, 내가 모른 척하고 지나쳤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순간들.
이제는 나도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느꼈다
『페널로페』는 단지 고전을 뒤집는 책이 아니다. 이건 ‘말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드디어 말할 기회를 주는 책이다. 나처럼 살면서 어떤 감정을 계속 참고, 견디고, 잊으려 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이 더 깊게 와닿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오래 생각했다. 나는 언제 내 목소리를 꺼내본 적 있었나? 혹시 나도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느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삼켜왔던 건 아닐까?
마거릿 애트우드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한다. ‘이제는 너도 말해도 돼’라고. 그리고 그 말이 너무 늦지 않게 들려서, 나는 조금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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