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소설집이다. 짧은 이야기들이 묶여 있지만, 모두가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제목부터가 조금 슬프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마치 모든 가능성과 책임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느낌.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내 삶의 많은 순간들도 그랬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대부분 아주 조용하게 흐른다. 거대한 사건이나 드라마틱한 반전 없이,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정쩡한 관계, 어색한 감정, 설명되지 않는 거리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래서 더 진짜처럼 느껴진다. 현실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완벽하게 연결되지도 않고, 또 완전히 끊기지도 않은 채 흘러가는 시간들.
설명되지 않는 감정 속에서
읽으면서 자꾸만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됐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들, 애매하게 남아 있는 지인들, 아무 일도 없었지만 괜히 멀어진 사람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도 그런 느낌이다.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지만 결국엔 모른다. 한때 가까웠지만 지금은 먼, 혹은 가까웠던 적조차 헷갈리는 사이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런 관계 속에서조차 뭔가를 붙잡으려는 인물들의 모습이었다. 완전히 끊기지 않기 위해, 아니면 그냥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런데 그 시도조차도 조심스럽다. 이 책은 그 조심스러움을 너무도 정확하게 그린다.
나는 그런 점에서 이 소설들이 너무나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우리 대부분은 확신하지 못한 채 감정을 흘려보내고, 말하지 못한 말들 때문에 관계를 놓친다. 그런데 그게 단지 소극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이라는 이름의 정지 상태
이 책은 청춘의 활기보다는 멈춰있는 느낌에 가깝다. 흔히 청춘은 꿈, 열정, 가능성으로 묘사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딘가 멍하다. 뭘 해야 할지 모르고, 해도 되는 건지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하루를 흘려보낸다.
나는 이 점이 너무 좋았다. 실제로 많은 청춘이 그렇기 때문이다. 뭔가를 원하면서도 그게 뭔지 모르고,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는 상태. 이 책은 그 정지된 청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건 무기력함이 아니라, 오히려 ‘아직 확신할 수 없음’에 대한 정직함이다.
그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만의 감정과 기억을 더듬어간다. 그리고 결국에는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고백하거나, 떠나간 사람을 조용히 받아들이게 된다. 거창한 변화는 없지만, 그 조용한 움직임이 더 크고 진짜 같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큰 결심은 없었지만, 그런 날들 속에서 조금씩 달라졌으니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것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많은 감정들이 결국 말로 옮겨지지 못한 채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좋아했다는 말도, 미안했다는 말도, 그냥 괜찮냐는 말도. 그저 마음속에서 몇 번 맴돌다 사라져버린다.
그게 너무 내 얘기 같았다. 나 역시 그런 말들을 수없이 삼켜왔다.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용기가 부족해서, 혹은 괜히 어색할까봐. 그러다 보면 그 감정은 나만 알고 있는 게 된다. 공유되지 못한 채, 나만의 기억 속에서 자꾸 반복된다.
이 책은 그런 감정을 조용히 꺼내 보여준다. “그때 그런 마음이 있었지?” 하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꼭 해결되지 않아도, 그냥 누군가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안의 감정 몇 개를 조용히 풀어낼 수 있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 우리가 모두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못 했던 사람,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사람, 아니면 애초에 방법을 몰랐던 사람. 우리는 다 그런 사람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내 어정쩡한 과거들, 망설임, 미루었던 마음들을 떠올렸다. 그게 잘못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뿐. 중요한 건, 그런 시간들을 지나온 나 자신을 인정해주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소설은 조용했지만, 그 여운은 길었다. 그건 아마, 이 책이 내 얘기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오래 생각하게 되는 그런 책. 내 청춘의 어딘가에 조용히 붙어 있는 이야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