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의 탐닉』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조금 뜨끔했다. ‘진심’이라는 단어는 늘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거기에 ‘탐닉’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그 느낌은 확 달라졌다. 마치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이, 때로는 위험한 중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조앤 실버의 이 소설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달콤한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솔직하고,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관계에 대한 기록이다. 말하자면, 이건 감정이라는 것을 너무 많이 믿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그게 참 낯설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스스로를 던졌던 날들
주인공은 젊은 시절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 그리고 그와 함께 있었던 시간들을 천천히 돌아본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이해했고, 그만큼 자주 상처를 주었다. 나는 그들의 관계를 보며, "사랑이 깊을수록 더 아픈 건 왜일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랑이라는 건 종종 우리가 감정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도 그런 사랑을 한 적이 있다. 나보다 그 사람을 더 먼저 생각했고, 그 사람이 힘들면 나도 무너졌고, 그 사람의 표정 하나에 하루가 오르락내리락했다. 당시에는 그게 ‘진심’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어쩌면 감정의 탐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보다 그 감정 자체에 중독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조앤 실버는 그런 관계를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 현실적이면서도 깊은 내면 묘사. 단순히 ‘사랑했다, 끝났다’가 아니라, 그 관계가 사람의 자아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지 보여준다. 나는 그 문장들을 읽으며 몇 번이고 숨을 고르게 됐다. 내가 지나온 감정들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을 말하지 못할수록 더 깊어지는 거리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수많은 대화가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감정들은 자주 비껴간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고, 그립다고 고백하지 못했고, 힘들다는 말조차 삼켜버렸다.
나는 그게 너무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나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그 감정을 끝내 말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오히려 너무 커서 말하지 못했던, 그런 감정. 그 감정들은 결국 내 안에 고여 있다가, 관계가 끝난 후에도 한참을 떠돌았다. 조앤 실버의 문장에는 그런 감정의 잔재가 가득하다.
말하지 않았다는 건 끝내 마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의미지만, 동시에 가장 진심이었던 순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감정일수록, 오히려 쉽게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소설 속 인물들이 얼마나 외로웠는지가 더 선명해진다.
관계가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 관계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무너졌고, 그 후 어떤 감정들이 남았는지를 보여준다. 많은 시간은 흘렀고,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지만, 그 감정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사랑은 끝났지만, 그 사랑의 기억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이 참 좋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정말 사랑했다면, 그 사람은 우리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는 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보냈던 시간은, 비록 끝났더라도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리고 그 감정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머물러 있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끝났다고 해서 모두 끝나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고, 그 감정은 우리가 생각보다 더 오래, 더 깊이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따뜻하게. 그래서 사랑은 끝나도, 그 사랑을 기억하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감정에 솔직했던 날들을 다시 바라보다
『진심의 탐닉』은, 우리가 얼마나 감정에 자신을 던졌는지, 그리고 그 감정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너무 과하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랑 때문에 많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닐까. 감정에 탐닉했던 시간들, 말하지 못했던 진심들, 끝내 놓아야 했던 손들.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들이라고, 이 책은 조용히 말해준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나의 과거 감정들과 아주 오랜만에 마주했다. 그때는 아프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런 감정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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