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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소설 리뷰 - 작고 조용한 감정들이 가장 깊게 남는다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소설 리뷰. 말하지 못한 감정, 애매한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무해함의 이면을 되짚어보는 이야기.

『내게 무해한 사람』은 큰 사건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우리가 말하지 못했던 순간, 그때 꾹 삼켰던 감정, 애써 모른 척했던 눈빛들. 그 조용한 장면들을 천천히 꺼내 보게 하는 책이다.

읽는 내내 마음 어딘가가 쿡쿡 찔리고, 나도 모르게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무해한 사람’이라는 말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 그 말이 얼마나 복잡한 감정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차분히,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무해하다’고 믿었던 사람들

이 소설집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내가 누군가에게 무해한 사람이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혹은, “그 사람이 정말 내게 무해했을까?” 라는 되묻기.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어떤 관계 안에서 애매하게 서 있다. 딱히 나쁜 사람도 없고, 명확히 선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 애매한 태도와 망설임이 상대에게는 오랫동안 상처로 남는다.

나는 그게 너무 현실 같았다. 우리도 그런 사이를 만들며 살아가니까.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매 순간 다정할 수는 없고, 상대를 위하는 마음과 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늘 충돌하는 게 진짜 인간이니까.

‘무해한 사람’이라는 말은 어쩌면 자기위안일지도 모른다. 나는 너에게 상처를 줄 의도가 없었어. 그래서, 나는 무해한 사람이야.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책을 읽으며 그 “무해하다”는 말이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덮고 있는지 다시 보게 됐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 더 오래 남는다

최은영 작가의 글은 늘 그렇듯 ‘조용히 흔든다’. 『내게 무해한 사람』의 모든 이야기는 폭발적인 전개도, 드라마틱한 갈등도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말하지 못한 감정’의 무게를 깊이 느끼게 된다.

특히 「그 여름」이라는 단편은 잊고 지낸 감정을 조용히 불러낸다. 그 여름의 친구, 그때의 감정, 말하지 못했던 마음.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학창 시절 어떤 친구가 떠올랐다.

그땐 왜 그 말을 못했을까, 왜 더 다정하지 못했을까, 왜 그저 스쳐가게 놔뒀을까. 말하지 못한 마음은 시간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작가는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짧은 문장 하나에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관계의 틈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

책 속 인물들은 대부분 ‘가까운 사람’과의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연인, 친구, 가족, 동료. 멀리 있는 타인이 아니라, ‘가까워서 더 아픈 관계’다.

나는 이게 참 좋았다. 아니, 좋았다기보다 너무 와닿았다. 왜냐하면 진짜 어려운 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의 어긋남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하는데 왜 너는 아무렇지 않지?” “우린 가까운 줄 알았는데, 그게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이런 문장들이 머리보다 가슴에 박혔다. 읽다 보면 정확히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처럼 익숙하고도 낯선 기분이 든다.

책을 덮고 나면 나는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마음을 주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게 정말 ‘무해한 마음’이었는지 한참 생각하게 된다.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우리를 흔드는 문장

최은영 작가의 문장은 참 특이하다. 감정을 과잉하지도 않고, 의미를 억지로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 문장들이 너무 명확하게, 아주 정직하게 마음속에 들어온다.

책장을 덮고 나면 누군가의 표정이, 지나간 감정이, 어느새 내 안에서 계속 떠오른다. 이건 공감 이상의 감각이다. 과거의 내 기억을 새롭게 편집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 책은 그저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요"라고 조용히 보여주지만, 독자의 마음속에서는 조용한 폭풍이 몰아친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무해하다는 말의 이면을 마주한 시간

『내게 무해한 사람』은 결국 우리 안에 있었지만 자주 꺼내지 못했던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고, 그 사람을 대했던 내 말투, 내 마음이 정말 다정했는지 의심하게 된다.

최은영의 문장은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그리고 그 조용함은 어떤 외침보다 오래 남는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란,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썼던 사람일 수도 있고, 상대가 얼마나 아픈지 보지 않으려 했던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책은 그 경계에 서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 누군가에게 무해한 사람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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