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마음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처음 접했을 땐, 제목부터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반신반의했다. '기적'이라는 말은 요즘엔 너무 쉽게 쓰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이 제목이 너무도 정확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이 책이 보여준 기적은 누가 구해주거나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답장을 해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그게 기적 아니면 뭘까?
고민을 누군가에게 꺼낸다는 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가
소설은 좀 독특하게 시작된다. 도둑질을 하다 도망치던 세 청년이 우연히 들어간 폐가가, 옛날에 '고민 상담'을 해주던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밤, 어디선가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이 이상한 상황에서, 도둑들이 처음으로 타인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결국 그들은 그 편지에 답장을 써주기 시작한다. 나는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써본 적이 있었나?” 그리고 또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던 마지막 순간은 언제였지?” 사실 요즘 우리는 고민이 있어도 검색창에 물어본다. '직장 스트레스 이겨내는 법', '인간관계 힘들 때 보는 영상' 같은 키워드로 위로를 구한다. 하지만 그런 조각난 정보들은 결국 아무도 내 얘기를 진짜 들어주는 것 같지 않다. 이 책 속 편지들은 달랐다. 그건 복잡하고 길고, 때로는 엉뚱하고 유치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 모든 글이 '살아 있는 사람의 고민'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소중했다.
가장 놀라웠던 건 '답변'이 아니라 '태도'였다
나미야 씨는 철저히 익명으로 고민을 받고, 진심을 다해 답장을 쓴다. 놀라운 건, 그가 유명한 인사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그냥 조용히, 진심을 다해서 글을 쓸 뿐이다. 그 태도 자체가 나는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요즘 우리는 조언을 줄 때조차,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정답처럼’ 이야기하는지에 집착한다. 길게 고민하는 것보다, 요약해서 알려주는 게 더 효율적인 세상이니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 나미야 씨는 고민의 배경을 상상하고,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며, 조심스럽게 말 한 줄 한 줄을 쌓아간다. 그걸 보며 부끄러웠다. 나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저 내 경험만을 기준 삼아 판단하고 그 마음을 '해결'하려 든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정작 그 사람의 속도가 어떨지, 감정은 어떤 상태일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기적’은 말 대신 마음이 오갈 때 일어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어딘가 조금씩 외롭고, 흔들리고, 아프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건, 자신이 음악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청년의 이야기였다. 그는 가족의 상황 때문에 음악을 그만둘까 고민하지만, 결국 한 통의 답장을 받고 마음을 바꾼다. 그 장면에서 울컥했다. 왜냐하면 나도 비슷한 기로에 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상황도, 환경도, 주변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혼자 포기하는 게 맞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청년이 받은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내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만, 당신이 포기하는 이유가 그게 아니었으면 해요.” 나는 그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심이 담긴 문장은, 때로는 말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이 책이 말하는 ‘기적’이었다.
편지는 느리지만, 그래서 진심에 닿는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매우 느릿하게 흘러간다. 극적인 사건도, 화려한 반전도 없다. 그저 고민이 오고 가고, 편지가 오고 가고, 시간이 흐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느림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속도 안에서 잊고 있던 감각을 되찾았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해봤다. 지금 나에게 누군가가 손편지를 써준다면, 그 글씨를 읽는 내 표정은 어떨까? 아마 나는 글을 다 읽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날지도 모른다. 느림은 결국, 마음이 닿는 시간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끔 이 책을 꺼낸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준다는 건, 사실 내 마음의 균형도 다시 세우는 일이니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화려한 사건 없이도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사람의 진심’이 있다. 그 진심은 편지라는 낡고 느린 방법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이 전해진다. 그리고 독자인 나 역시, 그 따뜻한 감정을 읽고 누군가에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요즘처럼 마음이 각박해지는 시대에, 이 책은 조용히 말한다. “지금도 누군가는, 당신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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